문인이 본 서울 - 권환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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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서울서 가장 번화하고 문화주택 많은 한 거리를 이리저리 거닐다가 그 걸음으로 서북에 솟아있는 인왕산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그 산의 서쪽에 한 중어리에 기지(基地)의 무덤같이 수북수북 흩어져 있는 ─ 부르조아 낭만주의 시적으로 형용한다면 해빈(海濱)같은 백사장에 붙어있는 조개껍질같이 아니 처녀의 유방같이 토막촌(土幕村)의 한 거리를 이리저리 거닐어 본다. 그러면 나는 어느 듯 천국과 지옥을 한꺼번에 순례(巡禮)해보는 것같은 느낌이 생긴다.

붉은 동와제(棟瓦製)의 2·3층 양옥, 혹은 후끈하는 난방장치기제(煖房裝置機製)의 푹신푹신한 안락의자 푸른 유리창 흰 커튼 그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키스를 하며, 인간의 향락을 다하는 모던보이, 모던 걸 ─ 나는 그러한 거리를 지내온 걸음으로 또 이러한 거리 넓은 땅 많은 집에 살데가 없어 이 높은 산 한 중어리에 땅을 파고, 두더지 집같은 그 속에서 어린 자식 늙은 부모와 같이 올올 떨고 있는 이 나라를 바로와 볼 때에 나는 어찌 천국과 지옥을 한꺼번에 순례해보는 느낌이 나지 않을 수 있겠나.

두 거리의 생활은 너무도 현격하게 영원히 병렬(並列)할 수 없을 만치 다르다. 천국에 사는 자가 지옥의 생활을, 지옥에 사는 자가 천국의 생활을 영원히 상상(想像)할 수도 없는 것같이 저 ‘문화주택’ 거리에 사는 자들은 이 토막촌 거리의 생활을 영원히 상상도 못할 것이며, 이 토막촌 거리에 사는 자들은 저 문화주택 거리의 생활을 영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한 지구 덩이에도 적도와 냉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만리(幾萬哩)나 되는 장거리에서 점진적 차이로 달라져 있다. 그렇지만 이 적도와 냉대보다 더 격조(隔阻)한 차이를 가진 문화주택 거리와 토막촌 거리는 3리(三哩)도 안 되는 서울 안에 포재(包在)해 있으니 우리는 경이(驚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참으로 이 이상한 서울 어머니에게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품안에 수화(水火)같이 화합할 수 없는 두 자녀를 안고 있는 우리 서울 어머니에게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기절할만치 이상한 광경을 보고 여실히 이 우주는 거룩한 하느님의 창조하신 것이 아닌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왜 그러냐하면 만일 거룩한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면 자기가 창조한 자기 자녀를 이렇게도 양극단의 생활을 하게 할 리는 없는 까닭이다. 이 토막촌의 생활! 그것은 확실히 인간생활(물질적) 레벨 이하의 인간생활이다. 인간으로서는 생활하지 못할 생활이다. 인간 지옥의 생활이다.

그러나 그 인간 지옥의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인간 지옥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자인(自認)하면서 낙천인종(樂天忍從)을 하는지, 혹은 전연히 자인을 못하는지 자기들도 당연한 인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별다른 불평 불만의 빛도 보이지 않고, 그래도 웃을 때는 웃으며 노래할 때는 노래하면서 묵묵하게 태양을 등에 지고 땅속으로 들어갔다. 태양을 바라보고 땅 밖으로 나오는 그 토막촌 거리의 사람들을 볼 때에 참으로 인간비극의 주인인 애증(哀憎)의 가치있는 지옥 인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친애하는 서울의 시민제군들이여! 그대들이 화신(和信)이나 삼성(三成)에 돌아다니는 그 걸음으로 인왕산 한 중어리의 토막촌으로 가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천국과 지옥을 한꺼번에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인왕산 한 봉우리에 올라가 바라보면 한 눈으로는 천국, 다른 한 눈으로는 지옥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진정한 서울’, 수화(水火)와 같이 영원히 화합하지 못할 두 다른 자녀를 한 줌 속에 안고 있는 이상한 서울 어머니를 참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조선일보》 (1932. 1. 3)